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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흠, 안녕하세요

당신은 누구죠?

분위기 보니 학생인데요

헐렁한 블라우스라

섹시해 보일 생각은 없는데
팔찌 하나는 요란하네요

관심받고는 싶군요

그 관심, 내가 줄게요

찾는 책이 있는데
소설에 F-K 섹션이라

일단...

다 읽지도 않을 포크너 소설 찾는
자존감 낮은 소녀는 아니고

스티븐 킹 팬이라기엔
낯빛이 너무 좋아요

누구 걸 찾는 거예요?

죄송해요

진짜 미안한가 봐요
착한 게 부끄러운 사람 같아요

그리고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걸죠

안녕하세요

여기 직원이세요?

그렇네요

- 찾는 책 있으세요?
- 폴라 폭스요

좋은 작가죠

묘하게 인정받은 기분이네요

따라오세요

"스타 작가"

여기 있을 거예요

'스타 작가'요?
거의 무명인 줄 알았는데

코트니 러브의 외할머니예요

알고 사는 건 아니죠?

네, 몰랐어요

무니 씨는 유명인의 사돈의
팔촌 책까지 여기 두죠

더 잘 팔린다고요

안타깝네요

사람들은
유명한 책이라 사지

감동받거나 바뀌려고
사지 않죠

네, 그게 대세더라고요

저 남자 보여요?
뒤에 안경 쓴 사람

방금 들어오면서
댄 브라운 최신작을 집었어요

이제 한 5~10분쯤
둘러보면서

같이 살 '그럴듯한' 책도
고를걸요

시리얼 사러 온 척
콘돔 사 가는 남자들처럼요?

그럼 더 튀기만 하는데
당당하게 살 것이지

댄 브라운이 취향이면
그렇다고 밝히라고요

사람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봐요

때론 의외의 존재기도 하죠

- 맨 위인데 꺼내드릴까요?
- 제가 할게요

혹시 노브라?

봐달라는 거네요

영화였으면

움켜잡고 선반 틈에서
은밀하게 섹스할 텐데요

이 작가 소설 읽어봤어요?
'데스퍼럿 캐릭터스'가 걸작이죠

얘기 많이 들었어요

- 아직 안 읽어봤어요?
- 알아요

기대 무너질까 봐
걱정돼서요

명작인 거 제가 장담해요

믿을 만하네요
서점 직원 추천이긴 하지만

정확히는 매니저예요

저기요, 직원 없어요?

밥맛 없어

급하니까 빨리요

고상하게 샐린저 책까지
사야 해서 짜증 나셨네

과자 먹으면서
포르노 보고 딸친 다음

댄 브라운 소설로
마무리하려고 환장했는데

좋은 하루 되세요

자, 어디 읽어보죠

- 후회 안 할 거예요
- 안 해야죠

폴라 폭스라
괜찮은 작가죠

코트니 러브
외할머니였던 거 알아요?

그래서 사는 거예요

책값 정도 현금은 있을 텐데
이름 알려주려고요?

- '귀네비어'?
- 네

부모님이 이름 한번
짓궂게 지었죠

다들 벡이라 불러요

그쪽은 '조'고요?

골드버그요

다들 조라 부르죠

좋은 하루 되라고
말 안 해줘요?

좋은 하루 보내요, 벡

조도 잘 보내요

미소 짓고
내 농담에 웃고

이름을 알려주질 않나
내 이름까지 물었어

전화번호 받았어?
너한테 제대로 꽂혔던데

그냥 친절한 거예요

나라면 폭풍 검색 들어간다

성까지 알잖아

열정이 지나치네요, 이던

내가 하는 말 있잖아
늘 끝을 보라고

'나 필요하면
요리책 코너에서 찾아'

'일 때문이지
재미로 보는 거 아니다, 진짜야'

사람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봐요

하지만 당신은요, 벡?
당신도 그래요?

그래요, 사람은 자기 짝을 찾아요

나도 운명을 믿어서
마음은 열어놓으려고 해요

사랑은 한 번 해봤는데
내 맘을 짓밟더라고요, 벡

나한테 제대로 상처 줬어요

징조를 눈치챘어야 했는데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불가능하죠

여기 그 증거가 있어요
클라우디아랑 론이죠

몇 잔 하고 온 거라고
그만 좀 캐물어

클라우디아는 간호사예요
싱글 맘이죠

저리 가버려
통화 중이더니...

클라우디아가 론이 쓰레기인 줄
알고 사랑에 빠졌을까요?

아니요, 왕자님인 줄 알았겠죠

안녕, 파코

안녕하세요

그리고 이젠

- 본인 인생만 망친 게 아니에요
- 가버리라고!

집에 오기가
왜 그렇게 싫은 건데?

안에 괜찮은 거야?

- 두 분이 대화 중이에요
- 허구한 날 친구나 만나고!

- 지겨워 죽겠어
- 와

그새 다 해치웠네

술술 읽혀요, 재밌네요

"삼총사"

다 읽으면 말해
다른 책 갖다 줄게

엿 먹어, 론! 나가!
저리 가라고!

배 안 고파?

방금 미트볼 샌드위치 사 왔는데

어젯밤 남긴 태국 음식이
기억났지 뭐야

아뇨, 엄마가 이따
차려주실 거예요

아쉽네, 이건 금방 상해서
버려야 되는데

정말요?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

벡, 요점은
사랑이란 복잡하단 거예요

"무니의 서점"

남자는 스스로를 지켜야 해요

당신이 안전한 사람인지
확인해야 했어요

당신의 이름이 영광스러운
출발점이 된 거죠

귀네비어 벡은 많지 않거든요

찾았다
전부 공개 계정이네요

봐주고 들어주고
알아주길 바라는 거군요

물론 기꺼이 그렇게 해줘야죠

고향은 낸터킷섬

형제로 클라이드와
안냐가 있군요

부모님이 작명에
진짜 짓궂은 게 맞네요

12살 때 부모님이 갈라섰군요
아빠가 사진에 없잖아요

브라운대에 문학 전공
멋진데요

부전공으로 등신들 상대

미술학 석사 따서 성공하려고
뉴욕대에 진학했나 봐요

아직도 글은 쓰네요
간신히

5년 뒤면 기억도 못 할 순간을
사느라 바쁜 거죠

어떻게 아냐고요?
당신이 계속 삶을 포스팅하니까요

솔직히 이런 건
정이 안 가네요, 벡

서점 나가고
몇 시간 뒤에 사진 올렸네요

귀여운 점원 얘기가
빠진 게 걸렸지만

온라인 생활은
현실이 아니니까요

짜깁기죠

벡의 이런 모습을
골라 붙이는 거예요

외향적이고 사랑스럽고
귀엽고 유연한 이미지를

그러니 내 얘기를
공유하지 않았다는 건

오히려 우리가 정말
통했다는 얘기죠

그다음엔 우리 친구 인터넷이
당신 주소를 알려줬어요

"스트리트 뷰
뱅크가 171번지"

저기 있네요
훤한 대형 창이라

좋네요, 너무 좋아요

임대 기숙사 같은데요

참 나! 공포 영화나
뉴스도 안 보고 살았나요?

하긴 사람들이 봐주길
바라는 거니까요

이런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요

우리가 더 알아갈 때쯤

제안 하나 할게요

내일 하루 같이 있을래요?

당신이랑 나 단둘이

꿈을 좇는 자들이여
포기하지 말라

그동안은
맥앤드치즈를 즐겨라

귀엽네요, 가볍지만 귀여워요
다른 매력은요? 찾아보자고요

우리 하루는
꼭두새벽부터 시작해요

당신이 6시 반 수업을
가르친다고 올려서 알았죠

수업 이름은 '몸의 흐름 깨우기'

소호의 눈 퀭한 폭식증 엄마들의
땀에 젖은 등을 쓰다듬고...

오늘 자세 좋네요, 타샤

형식적인 웃음에
가짜 칭찬까지

10시쯤엔 캠퍼스에서
낭만주의 수업 조교 일로

꼰대 앞에서
과장된 연기를 해요

안녕하세요, 레이 교수님

폴이라고 부르랬지
수업할 준비 됐나?

딱 봐도 따먹을 기세네요

당신도 약아서
여지를 주는군요

뭐, 손해 보는 건 없으니까요

수업 끝나고
좋아하는 카페로 가서

모처럼 종일 글 쓰려는데

인생이 도와주질 않죠

부자 친구들이
지금 막 일어났거든요

할 일 없다고

목적도 딱히 없이
SNS에 올릴 밤 약속을 잡죠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

진짜 좋아서 만나는 친구예요?

- 건배!
- 예!

- 아, 생일 축하해!
- 정말 고마워

비싼 취향은 또 어떻고요

- 준비됐어?
- 고마워

맘에 들어?

아니, 별로야
당연히 맘에 들지!

제이슨이 사 준 선물은
별로였는데도

아니카가 결국
뒤로 하게 해줬대

- 웬일이니!
- 때 돼서 한 거야

내 선물 보고도
어디 싫다 소리 나오나 봐

나비잖아, 내 올해 수호 동물
기억해준 거야?

네가 맨날 떠들어댔으니까

저 사이에
간절히 끼고 싶군요

- 생일 축하해
- 너무 예쁘다

저들은 끝나고
할 일 없으니까요

5시까지 파티하고
내일 쉬면 그만이지만

당신은 안 되잖아요
생업 뛰러 가야 하니까요

벡, 맥퀸 거잖아
얼마 줬어?

창고 정리 세일하길래

2010년
디자이너 자살 이후로

스카프 세일한 적 없거든

아니카라고 해도
저건 너무 비싸

쟤한텐 아까워

친구들이 다 멍청하진 않네요

넌 늘 이래

여력도 안 되면서
통 크게 베풀고...

- 미안한데 넌 너무 착해
- 별거 아니야, 상품권 썼어

얼마나 궁한 거야?

무슨 일인지 말해봐

당신을 아끼긴 하나 보네요

말은 고마운데...

내가 현금 빌려줄게

누누이 말하잖아, 괜찮다고

생색을 내는군요

뭐든 해줄 수 있다니까
내 말 잊지 마

- 정말 같이 못 가?
- 글 써야 돼

선비 납셨네
나중에 봐

베프라더니 고작 이거예요?

그렇다면 정말 외롭겠어요

당신 SNS는 거짓말투성이예요

SNS에선
태평한 예술 애호가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이런 진짜배기가 또 있나 싶어요

산만함의 끝을 달리다가도
혼자가 됐다 하면...

키보드로 돌아와
글을 써내려고 해요

고마워요

잔돈은 됐어요

들여보내 줘

벡, 이 새낀 누구죠?

웬 여자가 네 좆 빠는 걸
내 친구가 봐야겠어?

그것도 내가 데려간
파티 화장실에서!

취했어, 싸지도 못했고

그게 변명이야?
싸다 말았다는 게 할 소리냐?

애초에 딴 여자랑
화장실에 간 건

잘못이야

근데 걔가 좋은 마약이 있댔고
요새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조노랑 공정 시작할 땐

어떤 맛을 넣을지
고르는 일인 줄 알았는데

미생물 관리 강의를 매일
16시간씩 듣는 거나 다름없잖아

이러니 아무도
수제 소다 회사를 안 차리지

그래서 미국인이 발암 물질 든
쓰레기 음료나 마시는 거야

애인 몰래 오럴받은 얘기에서
암 해결론으로 넘어가시겠다?

정말 대단하다

벡, 나는...

난 일에 질식해 죽겠어

잘난 너처럼 딴 사람이랑
어떻게 해볼 시간도 없다고

등신짓 저지른 거 알아
근데 이제 잘할게

너랑 잠이나 자는
남자로 남기는 싫어

너만 보면 미치겠어

잘해봐요, 벡
제대로 낚았네요

벤자민 J 애쉬비 3세
3세씩이나

그리니치 출신에
기숙학교 다녔고

아빠가 그 '애쉬비 중개사'의
벤 애쉬비구나

일을 두 개나 때려치웠네
하나는 모델 일, 얼씨구

소개팅 어플
공동 제작도 했군

'러브훅스'라고 음악 취향으로
연결해주는 어플이지

'수제 소다' 현 CEO에

좌우명은

'손으로 더 잘 마셔라'
말이 되진 않지만

소탈함이 묻어나네

600달러짜리 일본 스니커즈
신는 사람다워

헤어스타일, 흑인 인권운동 게시물
리트윗하면서 특권 의식 감추기

비난하는 건 아닌데
미국의 단점만 죄다 모아놨네

봐요, 이래서 검색을 한다니까요

당신은 남자를 잘못 골랐어요

나쁜 남자한테 빠지죠

받아주고 상처 주게 내버려 두죠

너무 멀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당신이 오르가슴
근처라도 갔다면

브로드웨이 쇼처럼
호들갑을 떨었겠죠

근데 안 그러네요
못 느꼈으니까요

"데스퍼럿 캐릭터스
폴라 폭스"

- '데스퍼럿 캐릭터스'라
- 최근에 샀어

다 읽으면 빌려 가
그 작가 최고작일걸

우리가 영입한
조노 컨설턴트가

이런 걸로 닦달해댔어

사무실에서 액을
철저히 멀리하라고

책 제목이 '절망'이란 뜻이잖아

스스로를 절망이라고
생각하지 마, 벡

자기는 정반대니까

내가 아는 여자 중
제일 똑똑해

솔직히 기막힐 정도야

젠장, 가야겠다
조노 전화질도 기가 막히네

언제 사무실 들러서
새로운 맛 시식해봐

쿠민 맛 개발 중인데
자기 인도 음식 좋아하잖아

그럴게, 좋지

그건 그렇고 잘 어울린다

군살 말이야

그래, 가고 있어

피자 시키는 거야?

저번처럼 엿 먹이지 말고
글루텐 프리 크러스트로

비건 전문집은 싫어
비건 치즈 맛 거지 같아

프랑스 고급 요리 말이야

아니, 조노
내 말 들어봐

반죽인데 어떻게
반만 글루텐 프리로 하냐?

통밀 반죽을 써야 된다고

역시 못 느꼈군요

그래, 그렇게

고맙수, 친절하기도 해라

택시도 잡아줄 수 있을까?

그럼요

- 고마워요
- 네

이야
설마 벌써 다 읽은 거야?

거의 다요

너무 재밌어요

근데 대화가
이상할 때도 있어요

서로 죽이면서도
친절하게 굴잖아요

19세기였잖아
그때까진 매너가 있었어

다른 책 가지러 가면
안 돼요?

너무 늦었어, 파코
글쎄다

좋아, 그거야

지금 싸줘

오늘 무슨 날인가?
나만 빼고 죄다 그 짓이네

잉꼬 커플까지 화해하다니

그래, 그러지 뭐

뒤마가 흑인이었던 거 알아요?
검색해봤거든요

할머니가 노예였고
아빠는 준장이었대요

부대 절반을 해치웠고요

서점 직원이니까
그 정도는 이미 알았겠죠

몰랐어

- 근데 어쩌다 일하게 됐어요?
- 무니 씨가 고용해줬어

내가 너보다 조금 컸을 때
뽑은 셈이지

- 좋은 분 같네요
- 재수 없어

책은 사랑했지
사랑하는 법도 가르쳐줬고

한 번도 뵌 적이 없네요

- 돌아가셨어요?
- 아니, 늙어서 그래

미안, 파코

여기 하나 챙겨뒀는데
이던이 팔았나 봐

- 뭘요?
- 다음 읽을 책

이리 와
좋은 거 보관하는 데가 있어

으스스해요

케이지야

초판본과 수집본을 보관하지

춥네요

책 때문에
섭씨 18도로 해놨어

좀비들 닥치면
여기 숨어야겠네요

밀크셰이크는 내려놓을래?

조심해라, 조셉

책의 가치는 상태에 달렸어
잘 봐라

늘 섭씨 18도야

습도는 40%, 너무 습하면
지면에 곰팡이가 피고...

너무 건조하면 갈라진단다

책은 항상 똑바로 세워

그래야 책등이 틀어지거나
우리 표현으로 '뜨지' 않아

지면은 절대 접히거나
주름이 가면 안 돼

먼지는 비화학 성분
먼지 제거제로 닦아

늘 책등을 향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방에 햇빛은 금물이야

햇빛은 책을 망쳐
화재만큼

순식간에

오래된 책 관리 하나에
기억할 것도 많네요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건
보통...

가장 힘없는 존재야

그래서 우리처럼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

'돈킥소트'?

'돈키호테'
기사도를 믿는 사나이가

고리타분한 기사가
되는 얘기야

기사도가 뭐예요?

사람을 존중하는 거야
특히 남자가 여자를

재밌어
내가 좋아하는 책이지

집에 가져가기는 그래요

초판도 아니고
그냥 오래된 책이야

그리고 널 믿어

- 어디 갔었어, 파코?
- 밀크셰이크 마시러요

- 모르는 사람이랑?
- 조는 아는 사람이에요

모르는 사람 맞아

들어가 있어

내 여친 애한테서 떨어져

미안하지만 애가 나와 있었고
집 안 소리가 다 들렸어요

어디서 훈계질이야

착한 척은
딴 데 가서 하라고

보호 관찰관만 15년이야
네 속셈 모를까 봐?

여자나 패는
쓰레기 주정뱅이 주제에

무슨 깨우침을 주시려고?

미친놈

파코한테서 떨어져
안 그러면

스테이크 칼로
그 미친 눈깔 썰어줄 테니까

세상엔
무서운 사람도 있어요, 벡

그래서 안전이 중요한 거예요

지금 하려는 일도
그 이유에서고요

재밌는 거 알려줄까요?

가스 누출 신고는 전문가에게
조사 안 받으면 불법이래요

당신을 만나고
배우는 게 많네요

벡? 또 문 열어놓고 갔네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당신 스케줄 꽉 찬 날
가스 회사에 전화해뒀죠

당신을 놀라게 하긴 싫거든요

벡 여기 있나요?

아뇨, 관리인이 열어줬어요
누출 신고가 들어와서

네, 들었어요
이상 없나요?

네, 멀쩡합니다
애인한테 안 샌다고 전해요

끝났으니 이만

네, 고맙습니다
잠가도 되겠네요

당신의 본모습을 알아야겠어요

가난한 시인 학생에

꿈도 못 꿀 임대 아파트에
산다는 거 말고요

어디 있는 거죠?

우리가 같이 살면
돼지우리는 아닐 거예요

내가 치울게요

이런 냉동식품도 끝이에요
내가 매일 요리해줄게요

빨래도 해줄게요

당신이 좋아하는 책 관리도

아침마다 침대 정리도 하고요

여기 있었네요

나랑 아무리 씨름해도

비밀번호 걸라는 얘기는
빠짐없이 꼭 해줄게요

'언젠간 사랑이
더는 필요하지 않으리'

'언젠간 모든 걸 짊어지는 게'

'그대 일인 것처럼
세상살이를 하지도 않으리'

'태양, 하늘은
밤에게는 힘겨운 것'

좋아

아주 좋아

근데 나머지는 어디 갔어?
20쪽이 부족하잖아

사실은 매일 일하고
점수 매기느라...

일정이 빡빡하면
시간제로 돌아가

그럼 조교 요건에 안 맞아요

집에서 안 쫓겨나려면
돈이 필요하고요

알아서 해야지
여기 다닐 정도면 똑똑하잖아

- 제발요, 레이 교수님
- 폴이라니까

폴, 나머지는
금요일까지 채워 올게요

시간제만은 안 돼요, 아셨죠?

응원하겠네

계속 그렇게만 해

심오한 토론은 환영이야
수업 끝나고 저녁 어때?

시를 심도 있게 논하려면
한잔해야지

내가 좋아하는 술집이 있는데

저야 좋죠, 폴

다만 사모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작가 지망생 돕는다고?
내 인심 넉넉한 거야 잘 알지

목요일 밤에 괜찮나?

목요일 밤에 봬요

좋아

남은 며칠 걱정은 붙들고
집에 가서 몰두해

오늘 밤에 봐야겠어

가능하면 봐, 자기
야근이라서

추신, 손에서 아직도
네 냄새가 나

당신 컴퓨터 뒤지면서
두 가지는 확실히 알았어요

첫째, 아빠가 돌아가셔서
최근 사진이 없다는 거

약물 과용으로 돌아가신 걸
당신이 발견했고

그날 일을 시로 몇 편 썼는데
아직 못 끝냈군요

정말 안됐어요, 벡

근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두 번째 찾은 게 대박이거든요

오전 11시 6분, 서점에서
나랑 만나고 1시간 뒤에

그룹 채팅에서
좌욕 장점 얘기하는데 당신이...

와, 글 좀 읽는
남자 사람을 만났어

언론에 알려야 해

나와 어울리는 사람을
만날 때가 이제야 온 걸까?

내가 미친 게 아니었단 걸
알려줘서 고마워요

이런!

네, 저번에 돈 보내실 때
하신 말 기억나요

네, 감사하죠

저도 일은 계속해요
그나마 여기가 제일 싸죠

그랬어요
잠자리 제안이나 다름없죠

신고 못 해요
그렇게 되는 게 아니에요

난 걱정 안 돼요
로맨틱 코미디 보면

나 같은 남자는 툭하면
이런 위기에 처하니까요

학교랑 세상은 다르죠
세상은 그렇게 안 돌아가요

엄마가 많이 도와주신 거 알죠
여기가 힘들어서 그래요

네, 해결해볼게요

네, 저도 사랑해요

끊어요, 엄마

괜찮아요, 벡

안녕, 벡

이년아, 어디야?
와서 놀자!

안 돼, 오늘 일진 최악이야

- 무슨 일인데?
- 벡, 그게 뭐든

해결 못 할 일은 없어

- 그래, 우리랑 말술이 있잖아
- 대박, 세일한다!

- 너희 나 사랑해?
- 당연하지

- 물을 것도 없지
- 그래

그린포인트에서 만나

네가 여기로 와, 이리로

- 여기 진짜 재밌어
- 아니야

- 정말이야
- 그래

날 위해 할 일이 있어

가면서 문자 할게

이따 봐

- 안녕!
- 안녕!

젠장!

우리 그린포인트에서
보겠네요, 벡

그린포인트는
절대 안 오는데

사랑에 빠지면
뭔들 못 하겠어요?

안녕하세요
몇 잔 더 시킬게요

잠깐만요

얘들아

쟤 무슨 생각이래?

오픈 마이크는 모델 겸 비건 겸
싱어송라이터나 하는 거지

지망생 나부랭이가 읊는

인생의 처량함이 담긴 시를
누가 듣고 싶겠어?

친구들 참 의리 없네요
그중에 피치가 최악이에요

피클 국물 샷 추가요

벡, 꼭 오늘 해야겠어?

그래

요즘 내 인생은
생존이 전부였다고

애초에 여기 온 이유를
나한테 떠올리게 해줄 거야

- 그래
- 그렇지

- 파이팅, 잘한다
- 누구한테 문자 해?

벤지도 불렀어

- 벡...
- 왜? 벤지도 시 좋아해

- 그렇겠지
- 그래서 온다고 답했어?

웃는 이모티콘 한 줄로
45분 전쯤 답장 왔어

세상엔 나쁜 놈도 있다는 걸
깨달아야 돼

알아, 피치

나한테 걔가 나쁜 새끼인 거
계속 일깨워달라며

다음으로 모실 분은
귀네비어 벡

- 좋아
- 좋았어

상처받을 테면 받으라지!

그래

- 건배
- 좋아

- 좋았어
- 좋아

멋지게 하고 와, 벡!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벡이고요...

뻐기는 건 아니고 그냥...

저는 시인이에요

시인 맞지!

맞잖아!

'언젠간 사랑이
더는 필요하지 않으리'

'언젠간 모든 걸 짊어지는 게'

'그대 일인 것처럼
세상살이를 하지도 않으리'

'태양은 밤에겐 힘겨운 것'

'두근두근 소리에 깨는
은밀한 시간'

'대답하려 일어나지만
그는 거기 없네'

'그대의 내면에서
나는 소리니까'

'아무리 깊숙이 들어가도
그대는 대답할 수 없네'

'약한 애가 멋진 깡패를 사랑하듯
그대는 그를 사랑했네'

'그에 대한 노래를 썼지'
그러니까...

'그에 대한 시를 썼지'

'아직도 그를 시로 써내고
지금도 쓰고 있네'

왜 그렇게 우울해요?
너무 우울하네

분위기 좀 유쾌하게
바꾸면 좋겠는데

다들 동의할걸요
가수 다시 불러오죠

죄송해요, 까먹었네요

잠시만 어디였는지 찾을게요

더는 못 보겠네요
미안한데 안 되겠어요

당신이 훤히 들여다보여요
당신은 사랑에 눈먼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글, 도시, 친구들

무엇보다 벤지 같은 남자들은

하나같이 당신에게 사랑을
돌려주지 않아요

당신은 다 퍼주는데

우린 너무 열심이에요
서로 많이 닮았어요

마지막 남은
진정한 낭만주의자들이죠

기관차, 9호 기관차

뉴욕 지하를 달리네

새로 사귄 또라이 노숙자 씨랑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이번 주 두 번째로
운 좋은 일이 생겼다

실화인가?

꿈꾸는 거 같아

꿈 아니네

벡, 혼자 있기엔
너무 취했어요

변태라도 따라왔으면
어쩌려고

잔뜩 취했는데
선로 코앞에 서면 어떡해요!

벡! 소다수 파느라 안 나타나는
등신 새끼한테 문자 그만해요

"왜 내 시 낭송회 안 왔어?"

내 열차가 선로에서 출발하면

벤지를 원하는군요

"와줬으면 했는데"

벤지가 필요해서
전화를 벤지처럼 잡고 있어요

그게 유일한 연결 수단이니까요

벤지는 잊어요

그놈의 망할 전화

올려!

기관차, 9호 기관차

뉴욕 지하를 달리네

이봐요!

괜찮아요?
일어날 수 있어요?

꼼짝 말아요

감전당할 거 천지니까

손 줘요

올려!

선생님, 제발 다물어요!

손 줘요

열차가 와요

올려!

손 줘요! 당장!

올리라고!

올리라니까!

난 몰라, 미안해서 어떡해요

아뇨, 괜찮아요

이 옷 어차피
맘에 안 들었어요

- 정말 미안해요
- 괜찮아요

마셔도 돼요?

그럼요

택시 잡아줄게요, 알았죠?

늘 이렇진 않아요

밤을 제대로 보냈나 봐요

제대로 보냈죠

스토커처럼 굴긴 싫은데

그쪽 아는 것 같아요

네, 그럼요

기억나요, 미안해요

맨정신일 때 머리 올리면
이렇게 생겼는데

네, 기억나요

괜찮아요, 흔한 얼굴이라

아닌데요

'데스퍼럿 캐릭터스'
기억나요

네

어느 방향이에요?

빌리지요, 근처 살아요?

같이 타고 가요
최소한의 호의예요

그러죠

뭔가 이루려고 뉴욕에 왔어요?
난 그랬는데 잘 안 풀리네요

하루 18시간 정신없이 달리는데
왜 그럴까요?

주책이야
신경 쓰지 마요

아뇨
나도 그렇게 느낄 때 있어요

아는 사람이
서점 주인인데

모든 책은 결국
한 가지 진리로 끝난다고 했죠

IQ가 일정 치를 넘으면...

인생이 고달프게 느껴지는데
그 일정 치가 높지도 않다는 것

더 멍청했으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그럼 세상 사람들이
그쪽 시를 못 보잖아요

내가 시 쓰는 건
어떻게 알아요?

뉴욕의 젊은 작가라면
다 쓰잖아요

저도 시를 많이 읽거든요

누구 시 좋아해요?

스트런드, 섹스턴, 메릴

제가 밤에 읽는 작가들인데

밤마다 그것들 읽으며 잠들면

누가 봐도 여기 사람이네요

- 성이 뭐랬죠?
- 골드버그요

고향이 어디예요, 조 골드버그?

여기서 자랐어요

잠시 떠난 적도 있죠
여자 쫓아서

- 근데 돌아왔고요?
- 네, 놓쳤거든요

쫓아다니는 거 잘 못해요

나도 그런데

우리 집이네요

나쁘지 않네요

술 깨게 해줘서 고마워요

목숨 구해준 것도

목숨을 구하긴요

구한 거 맞죠

이런

그럼 그렇지

- 벤지잖아
- 안녕

이쪽은 조야
오늘 밤에 나 살려주신 분

선로에 떨어졌거든
말도 못 해

사람은 원래 착하다니까, 자기

좋은 일 했네요, 형씨

'형씨'라니
머리가 아까운 놈

그래, 벡
밖이 쌀쌀하네

- 저 혹시 연락처 좀...
- 네

젠장!

내 전화!

지하철에서 흘렸나 봐요

그럼 번호라도 줄래요?

전화 바꾸면 연락하게

전 이메일 노예죠

그래요, 똑똑하네요
모르는 사람이니 조심할수록 좋죠

그렇군요

주소는 '벡인리얼라이프'고
지메일이에요

알겠어요

'벡 인 리얼 라이프'군요

고마워요

- 이번 주에 알게 된 게 있어요
- 못 가서 미안해

당신은 특별해요
재능 있고 열정 넘치죠

똑똑한 사람이에요

딴 사람 같은 데가 있긴 해요
가령 전화도 안 잠그고

벤지 같은 남자한테 빠지잖아요
당신도 잘 알지만 못 멈추죠

다들 누군가가 필요하니까요

당신한테 진짜 필요한 건
당신을 구해줄 사람이에요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도와주게 해줘요

조

파코, 안녕

무슨 일이야?
왜 나와 있어?

론 때문에요

취해서 집에 들어오더니

소리 질렀어요

제가 똑똑한 줄 안다면서

책 읽으면서
자기를 바보처럼 봤다고

어떻게 됐어?
널 때렸니?

전 안 건드렸어요

말리려고 했는데...

- 죄송해요
- 파코

파코, 괜찮아
정말이야, 괜찮아

따라와
같이 고치면 되지

고치는 일의 첫 단계는

아무리 심하게 망가졌어도
고칠 수 있다는 걸 아는 거야

책도 예외가 아니야, 알겠지?

네

여기 있는 건 라인 프레스야
대형 죔쇠라고 보면 돼

폴리비닐 초산 풀을 쓰면

지면이 탈 일이 없지
바늘이랑 실

마지막으로
'벅스 버니'에서 튀어나온

듬직한 나무망치

보여?

이건 필요 없어

조노! 들어봐

'벤지 씨, 소다 얘기 들었어요'

'제 가을 추천 목록에
벤지 씨 회사를 넣을까 해요'

'상의하고 싶은데 시음 어때요?
제프 페벤지'

네가 맨날 리트윗하던 사람?

'뉴욕'지 문화면 담당이야

당장 답장 때려

당연하지
생각 좀 하게 떨어져

'제프, 쉼표
정말 반가워요, 친구, 마침표'

'네, 우리 소다 쩔죠, 마침표'

'만나서 시음시켜주고 싶어요
마침표'

시작해보자고

책등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벗겨내

손 조심하는 거 명심하고

'잘됐네요, 회의 끝나면
전화할 테니 시간 맞춰 보죠'

이 기회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겠어

몇 시쯤 만날까?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이미 상의했잖아

우리 제품의 시작엔
깔끔한 얼굴 하나가 제격이야

내가 더 어울려

좋아, 책등은 꿰맸고

이걸 잡고 그쪽으로
최대한 팽팽히 당겨

그래, 그거야

제프!

풀 바르고 실로 묶었으면

이제...

정확히 조준해서
딱 필요한 힘만 가해야 돼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제프
반가워요

저도 반가워요
여기 와봤어요?

아직 아는 사람 별로 없어요

시간 외 영업집인데 훌륭해요
고급지죠

네, 몇 번 와봤어요

그래요?

잘됐네요

편히 느껴지겠어요

먼저 가세요

그러죠

내려가서 왼쪽이에요

저기, 생각해보니까...

오후 2시, 문의 종이 울리고
난 준비됐어요

여기 온다고 친구들한테 말했죠?
당신 전화를 보곤 알았죠

- 금방 올게
- 그래요

안녕하세요

나 기억나요?
열차 선로에서 죽을 뻔했던?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고
잠깐만요

고맙단 말 하고 싶어서요

이미 했잖아요

또 고맙다고요

그날 밤엔 그렇게
가버려서 미안해요

- 손님이 있었잖아요
- 손님 아니었어요

그래서 선물 가져왔어요

됐어요
이런 거 안 줘도 돼요

입 닫고 보기나 해요

'기관차, 9호 기관차
뉴욕 지하를 달리네'

'당신 여자가 선로에 떨어지면
올려, 올려'

벌써 우리만의 농담이 생겼네요

그럼...

아무튼 선물 전했으니
이만...

너무 안 바쁘면
언제 한잔할래요?

좋죠

근데 전화를
아직 못 찾았어요

알아요
이메일 있잖아요

그렇죠

나중에 봐요, 조

곧 봐요, 벡

선수시네요

아주 선수야

내가 틀릴 때도 있다
사람이니까 실수도 한다

보면 알겠지

지하에 가서
수송물 확인해야겠어요

- 계산대 좀 봐줘요
- 응

사랑에 빠진 바보같이
구는 것 같지만

당신에 대한 건 잘 알아요

당신에게 어울리는 인생 되찾게
내가 도와줄게요, 벡

제발

무슨 생각인진 몰라도
사람 잘못 봤어요

아니요

맞게 봤어요

"사랑의 추억을 담아
닉 제레피에게 바칩니다"

자막: 이초롱